🎞Talks; 영화 잡지 《KINO》는 공고한 커뮤니티였다

새로운 관객이 영화의 미래다. 20여 년 만에 돌아온 《KINO》는 이들의 새로운 커뮤니티가 될 것이다.

2023. 12. 19.

새로운 관객이 영화의 미래다

서희영 바른손이엔에이 MMZ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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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X세대가 거리를 메웠던 시대. 잡지 《KINO》는 그 시대를 상징하는 묵직한 문화 아이콘이다. 골목 끝 낡은 시네마테크를 알음알음 찾아다니던 진중한 관객들의 가방에는, 잡지 《KINO》가 있었다.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경외, 감독의 의도를 뒤쫓는 집요함, 배우의 포부를 캐묻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잡지였다. 그 시대의 시네필들은 《KINO》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고, 어디에 모여야 할지를 결정했다. 그러나 결국 2003년, 《KINO》는 99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렀다. 그 시절의 시네필들은 이제 넷플릭스의 큐레이션을 흘깃 훑다가 멀티플렉스 아트관의 상영 스케줄을 잠시 확인할 뿐이다. 궁금한 신작 정보는 IMDB에서 검색한다. 이 시대의 시네필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KINO》가 단행본으로 돌아온다. 〈기생충〉 제작사 바른손이엔에이가 만든 영화 커뮤니티, MMZ에서 펀딩을 통해 탄생한 《KINO cinephile》을 제작 중이다. 2024년 초 새로운 시네필들을 찾아온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른손이엔에이 서희영 팀장은, 새로운 시네필에게서 영화의 미래를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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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O》가 돌아온다니, 믿기지 않는다.

영화 포스터 스타트업 ‘프로파간다’의 최지웅 실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최 실장이 《KINO》 광팬이다. 99호로 멈춰버린 잡지가 너무 아쉽다면서, 100호를 꼭 보고 싶다고 하더라. 물론 농담 반으로 한 이야기였지만, 그게 현실이 됐다.

《KINO》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런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수 있게 한 에너지가 궁금하다.

바른손이엔에이가 지난 6월 온라인 커뮤니티를 시작했다. MMZ라는 이름의 영화 커뮤니티다.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이 모인 공간이니, 여기서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함께 해 보고 싶은 니즈가 있었다. 안 그래도 주변 영화광인 분들을 만나며 방법을 여쭙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정성일 편집장을 비롯한 당시 필진이 다시 모였다. 제안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

바른손이엔에이 곽신애 대표가 《KINO》 필자 출신이다. 퍼즐 조각이 처음부터 잘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정성일 편집장을 비롯한 다른 필자 여러분도 흔쾌히 참여해 주셨다.

2023년이다. 곧 2024년이다. 펀딩을 통해 접한 《KINO》의 팬은 어떤 분들인가?.

옛 잡지에 대한 추억으로 참여해 주신 분도 물론 많다. 하지만 그저 영화를 좋아해서 참여해 주신 분도 많다. 그런 분들께 실제 《KINO》는 오히려 새롭다. 실리게 될 글 중에는 1999년생 독자의 글도 있다.

예전의 팬들만 《KINO》를 기다렸던 것은 아니란 얘기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KINO》는 일종의 아날로그 코드로 읽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VHS나 LP 같은 감성이다. 그런데 실제로 당시에 《KINO》를 읽었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그 이상의 의미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누군가 《KINO》를 들고 있으면, ‘아, 당신도?’ 이런 느낌이 있지 않았나.

시네필의 상징과도 같은 잡지였다.

《KINO》라는 잡지가 일종의 공동체 역할을 했던 것이다. 시네필들의 커뮤니티 말이다. MMZ의 첫 번째 프로젝트로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이유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서 함께 만들어내는 어떤 것으로, 의미가 명확히 연결된다.

그럼에도 왜 굳이, 지금 《KINO》인지 묻게 된다.

지금의 시네필은 예전과 다르다. 《KINO》와 같은 일종의 ‘가이드’를 따라 공부하듯 접근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의 취향에 몰두하고 엄청나게 몰입한다. 예를 들어 〈탑건〉이나 〈슬램 덩크〉 같은 영화를 20번씩 보는 분들이야말로 지금의 시네필이다.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발간된 영화 잡지 《KINO》 ⓒ 바른손이엔에이

OTT의 영향일까?

환경이 달라졌다. 먼저, 콘텐츠 자체가 너무 많아졌다. 그리고 정보도 흔해졌다. 그러니 예전 《KINO》의 역할 그대로 지금 돌아온다고 예전 그대로의 위상을 차지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히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라는 점에 주목하게 된 이유다.

그렇다면 이번 《KINO cinephile》, 내용도 달라졌을 것 같다.

예전 《KINO》가 담고 있던 진지하고 깊이 있는 글들은 당연히 담긴다. 필진이 뽑은 감독과 영화에 관한 글이다. 동시에 ‘팬’의 글이 굉장히 많이 담긴다.

‘팬’의 글이 담긴다는 부분은 새롭다. 필진의 반응은 어땠나.

당시 필진이 직접 나서서 다시 만드는 것은 과거를 끄집어내는 일처럼 생각될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이번에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KINO》는 의미가 좀 남다르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일종의 팬진(Fanzine)으로 구상했고, 그 의미에 필진도 호응해 주셨다.

팬진은 팬이 자발적으로, 직접 만드는 잡지다. 의미가 충분히 반영되었나?

MMZ 커뮤니티를 통해 펀딩으로 제작된 만큼, 의미는 충분하다. 실제로도 팬의 공간을 넉넉히 뒀다. 독자 여러분의 글을 받아 선정 과정을 거쳐 수록한다. 이번 단행본의 특별한 색깔을 낼 것 같다. 이와 함께 영화 밖의 분야에 계신 분들께도 영화 리뷰를 부탁드렸다. 소설가, 미디어 아티스트 등이다. 다른 시선으로 본 영화 이야기도 새로움을 더할 예정이다.

이번 《KINO》 단행본은 바른손이엔에이가 만든 영화 커뮤니티, MMZ를 통해 진행되었다. 〈기생충〉 제작사가 직접 영화 커뮤니티를 만든 이유가 뭔가?

극장 문화가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에 깊게 몰입하면서 2차 창작물을 내놓거나 굿즈를 소비하는 등, 훨씬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사실, 전반적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의 의미가 옅어지고, 잘되는 영화로 스크린이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편에는 이렇게 힘이 있는 팬 문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새로운 시네필이다.

영화 커뮤니티 MMZ 웹사이트 ⓒ 바른손이엔에이

새로운 관객에게 주목했다는 얘기다.

정말 좋은 영화를 극장에서 보면 상영시간이 끝나가는 것이 괴로울 때가 있다. 너무 아쉽고, 영화가 영원히 끝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새로운 시네필은 이런 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원한다. 영화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참여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영화의 미래가 있다.

MMZ는 새로운 시네필을 위한 공간인가?

영화를 콘텐츠로서 계속해서 파고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영화 이상을 소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 물론, 이미 존재하는 커뮤니티 공간이 있다. 그러나 운영 주체가 불분명하거나 책임감이 다소 부족한 경우가 있다. 영화 이후의 콘텐츠 소비가 발생하기에 이상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도 모 커뮤니티에서는 유쾌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

영화사 입장에서 현재 상황은 분명 괴롭다. 극장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에서 극장 문화의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속 가능할 방법을 추가로 찾아야 한다. 명확한 주체인 회사가 운영하는 커뮤니티라면, 분명 차별점을 가져갈 수 있다. 또, 아직 디벨롭 중이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해 운영의 투명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MMZ의 향후 계획이다.

사실, 영화사와 블록체인이 잘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다.

개인적으로도 코딩을 배운 적이 있고, 남편이 IT 쪽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서비스 기획에 있어 기술적인 부분이 멀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적극적인 관객이 영화계에 가져올 변화에 영화사가 발맞춰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블록체인이 이 과정을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게끔 도와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 6월에 시작해서 반년이다. 생각만큼 잘 되고 있나?

이번 《KINO》 프로젝트나 〈살인의 추억〉 4K 블루레이 프로젝트 등에 큰 호응을 보내주셨다. 이에 따라 회원 수도 꽤 늘어났다. 이제 숙제는 이분들이 지속해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KINO》 때엔 글을 적어 주셨고, 〈살인의 추억〉 때엔 블루레이에 수록할 인터뷰의 질문을 남겨주셨다.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우가 직접 답한 영상이 담긴다. 이렇게 프로젝트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점에 집중해 왔다.

가시적인 성과가 남는 활동들이다.

앞으로도 계속 파트너사들과 협력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겠다는 욕심이 있다. 다만, 자연스럽게 들어와 가볍게 수다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부분에 관해서도 깊이 고민하고 있다. 2024년의 MMZ를 더 기대해 달라.

글 신아람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