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alks; 불평등 재생산의 기지, 대학

출신 대학이 나고 자란 아파트까지 알려 주는 시대다. 학벌주의의 한국에서 지금 교육의 위기는 어떤 의미인가.

2023. 3. 21.

불평등 재생산의 기지, 대학

성균관대학교 천정환 교수

한국에서 학력은 너무 많은 것을 말한다. 몇 과목의 점수뿐 아니라 출신 지역, 소유한 부동산, 살아온 궤적까지, 지나치게 많은 것이 몇 글자의 대학 이름에 담긴다. 학력의 피라미드에 진입하지조차 못한 이들은 모든 사회적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은 왜 학벌 사회가 됐는가? 학벌 사회의 민낯은 무엇인가? 지식공유연대에서 활동하는 성균관대학교 천정환 교수에게 지금 한국의 학벌을 물었다.

지금의 한국은 학벌주의 사회인가?

한국의 학벌주의는 근대 이후 계속 존재했다. 동시에 신자유주의 체제에 맞게 더 나쁘게 진화하기도 했다. 지금 학벌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생산하는 중요한 기제다. 한국 사회의 사람들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는 때부터 평생 학력과 학벌의 영향을 받는다. 생각해 보면, 586세대인 내가 자란 때가 근대 이후 가장 평등했던 때다. 억압적인 군부가 외려 사교육을 금지했고, 고교 평준화가 실질적으로 운용됐다. 수도권과 지역의 격차도 지금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달라졌다. 경쟁 자체가 글로벌화 되고 자본주의는 더 두터워졌다. 학벌은 소위 말하는 부자들과 특권 중산층의 구별짓기의 기제가 됐다.

학벌주의는 능력주의와 다른가?

학벌은 출신 학교에 따라 집단과 파벌이 구성되고 권력화된다는 뜻이다. 학력과는 또 다른 의미다. 학벌주의 시스템 안에서는 학벌로 구성된 수직적ㆍ수평적 네트워크가 독점적인 지위를 누린다. 심지어는 세습도 한다. 그래서 ‘부모의 노력’만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재력’까지 필요하다. 한 사람이 나온 대학이 그 사람이 소유한 아파트의 이름을 말하는 시대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매우 복잡한데, 대입 제도를 바꾸고 대학 체제를 공공화해야 한다. 그중 한 가지 방안이 사립학교법을 바꾸는 것이다. 한국은 사립대 비중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중 사립대학은 사유화된 경우가 많다. 아빠가 이사장, 나는 총장, 며느리가 이사… 사실상 가족 기업이다. 그들의 ‘재단’은 공공적인 것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그래서 총장 직선출제가 중요한 이슈였다. 학내 민주화를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방안이다. 답은 나와 있는데 왜 해결이 안 되는 건가?

한국의 사회 문제 대부분이 그렇지 않나. 어떤 방향이 답인지 알지만, 기득권 구조와 거기 연루된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해결이 어렵다. 노무현 정부 때 드러났듯 대학 공공성 문제는 한국에서 드물게도 가톨릭, 불교, 개신교 모두 연대할 수 있는 문제다. 예컨대 사학재단의 가족들인 나경원, 장제원, 조국이 함께 할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건드리기도, 해결하기도 어렵다.

인터뷰 중인 천정환 교수

교육 문제는 어느 하나를 바꾸려면 또 다른 과제가 또 생기는 느낌이다.

맞다. 교육에 모든 문제가 연관돼 있어서 그렇다. 한국 사회의 교육은 노동, 부동산, 지역 문제까지 분리하기 어렵게 얽혀 있다. 복잡한 문제이다 보니 근본적인 것부터 사회적 합의가 안 된다. 어느 정도의 교육, 즉 학력을 어떤 사람들이 나눠 가지고, 이들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다 박살 났다. 현재 한국 대학 진학률이 70퍼센트 정도인데, 어느 정도가 적정선인지에 대해 생각하거나 질문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질서는 너무 빠르게 변한다. 자연스러운 합의는 이제 불가능하다. 소위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인데, 일부 대학의 대학 졸업장 가치는 엄청나게 떨어졌다. 그런데 학벌 위계의 시스템은 강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어떨까. 임금 차별부터 시작해 모든 사회적 차별을 여전히 감수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에서 대학은 어떤 역할을 하나.

교육이 가진 본래 목적 중 하나가 사회적 이동성의 실현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사회적 여건에 놓인 이들도 교육을 통해 더 인간 다운 삶을 누리고, 자기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된다. 그런데 지금의 대학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주요 도구가 됐다. 대학 사회 내에도 수많은 모순과 비민주적인 현상들이 자리한다. 앞서 언급한 사립대학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대학이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내외적인 작용을 통해 재생산하는 일종의 기지가 됐다.

줄어드는 학령인구도 지금의 교육이 마주한 문제 중 하나다. 학령인구 감소는 대학을 어떻게 위기로 몰아넣나?

학령인구 감소는 대학 내부의 위기를 심화한다. 돈 문제가 대표적이다. 지금 어떤 대학들은 실제로 돈이 없다. 특히 등록금 의존 비율이 높은 대학들은 심각한 재정 위기를 맞고 있다. 등록금 인상 이야기가 나오는 게 그런 이유다. 대학 내 재정 구조가 흔들리니까 비정규직을 늘리거나 인건비를 줄여 노동을 착취한다. 학령인구가 줄어들면 대학 내 반민주성이 더 심해진다.

인터뷰 중인 천정환 교수

심지어는 사라지는 대학들도 있지 않나.

인구 위기가 심해지면서 지역 대학은 더 큰 위기에 빠질 것이다. 앞으로 다가오는 5년 사이에 말 그대로 문을 닫는 대학이 수십 개가 나올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시장의 선택’이라는 편한 말로 가리고, 내버려 두는 게 옳은 선택일까? 대학이 문을 닫는 건 단지 대학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수천, 수만 명이 대학 주변에서 먹고, 살고, 다닌다. 대학은 문화와 지식을 생산한다. 이런 공간이 사라지면 그 주변은 모두 정신적ㆍ물질적 폐허가 된다. 그 과정에서 인구는 또 다시 유출된다. 사람이 사라진 대학 터나 건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남는다. 대학 부동산을 공공화하거나 새로운 공간으로 만드는 등, 다양한 대책이 필요한데 대부분이 학교법인 재산이다. 국가는 개입할 여지가 없다.

《한국에서 박사하기》에서도 말하듯, 사라지는 대학만큼 대학 내 구성원들이 마주한 문제도 심각하다.

대학 사회가 빠르게 변하면서 연구자들의 존재 방식, 이들을 담는 미시적 규율 체계 모두가 바뀌었다. 요즘에는 어떻게 해야 한국에서 교수가 되는지 아나?

잘 모른다.

아이비리그에서 대학원을 다녀야 한다. 10년에서 20년 사이에 이런 방향으로 급격히 변했다. 아이비리그에서 대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말은 곧, 영어 논문을 많이 쓰고 영어로 강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교수 인사고과 체제에서 영어 논문은 점수가 높다. 반면 한국 논문, 한국어 논문은 점수가 훨씬 낮다. 영어 논문이 300점이라면 한국 잡지에 실린 논문은 100점을 주는 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논문을 쓰는 이들이 교수가 되려면 무얼 해야 할까? 답은 하나다. 논문을 한 해에 다섯 편씩 써내서 350점을 겨우 맞추는 방법이다. 이런 형태의 미시적 규율 속에서 연구자의 삶이 정의되고, 지식이 생산된다. 이상하지 않나?

이상하게 들린다.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식공유연대 활동도 하고 있다.

그렇다. 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와 지식 공유를 위한 학술 단체 및 연구자 연대(지식공유연대)는 학문과 지식 생산을 합리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려 시작한 단체다. 한국연구재단의 학술지 정책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고, 작년에는 표절 등의 연구 부정 문제에 대응하는 활동을 했다. 오픈 액세스 운동도 그 활동 중 하나다. 한국의 연구자는 자신이 쓴 논문이 어떻게 유통되고 소비되는지도 모르거나 소외돼 있다. 그 과정을 학회와 연결된 사설 학술정보 업체가 담당하고 있다. 이런 사유화에 저항하고 연구자와 시민 모두가 학계에서 생산된 지식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오픈 액세스 운동의 취지다.

대학원과 인문사회과학계의 문제를 말하는 북저널리즘 시리즈, 《한국에서 박사하기》

교육과 학벌은 모두의 문제다. 관련자가 아닌 대중, 시민은 무얼 해야 하는가.

대학 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 네이버 웹툰 〈복학왕〉에 묘사된 것처럼, 지역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은 매일 자신의 출신을 자각한다. “나는 지잡대 출신”이라는 인식을 낙인처럼 새기고 사는 것이다. 지역대학 출신뿐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 편입 과정도 슬프고, 이상하다. 지역 사립대학을 다니는 학생은 지역 국립대학에 가는 게 목표가 되고, 서열이 낮은 수도권 대학에 다니면 이른바 ‘서성한’이나 ‘스카이’에 가는 게 인생을 건 목표가 된다. 그런데 ‘스카이’가 끝이 아니다. 한국의 학벌 위계는 이미 글로벌화 됐다. 한동훈 가족이 보여준 것처럼 자사고나 외고 위에 국제학교가 있고, 스카이 위에는 아이비리그가 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 학교들의 제도와 학비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그 불평등이 평생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그것을 얻기 위해 부정을 저지른다. 이런 구조는 바꿔야 하지 않겠나. 학벌의 문제가 지역의 문제, 세습의 문제, 부동산과 얽혀 있는 만큼, 모두가 학벌 사회의 관련자다.

글 김혜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