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뉴스레터에 인터뷰이 이름 오류가 있어 재발송해 드립니다. 혼선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재용: 본업은 문화예술계 종사자다. 재미없는 사람을 맡고 있다.

새롬: 요가와 명상을 안내하고 수련한다. 안 웃기기로 1,2위를 다투지만 포기하지 않고 웃기려고 노력한다.

다솔: 돈을 버는 일은 하고 있지 않다. 동북구연에서는 ‘부정충’을 맡고 있다. 뭔가를 하기 전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지만, 하게 되면 열심히 한다.

다운: 본업은 광고 기획자다. 동북구연에서는 성실히 참석하는 사람이다.

성은: 영상 만들고 칼럼을 쓰는 일을 한다. ‘긍정충’을 맡고 있다. 맨날 뭔가를 하자고 제안한다.

가재: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일한다. 동북구연에서는 게이를 맡고 있다. 소수성을 잘 공유하고 말하는 무대로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한다.

줄리아: 광고 회사에서 광고 기획 일을 한다. 전략적으로 준비해서 웃기려고 하는 타입이다. 모일 때마다 대본을 써간다.

재용: 첫 모임 때 내가 이름을 제안했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정말로 구술 문화의 일종이기도 하다. 우리가 모일 때 공감했던 건 타인을 비하하거나 혐오에 기반하지 않은 웃음을 만들고 싶다는 거였다. 그런 웃음엔 템플릿이 없고, 그래서 연구가 좀 필요하다. 그런 의미로 지었다.

다솔: 브레인스토밍하듯이 단어를 얘기하다가 조합했다. ‘웃기는’ 건 어쩌다가 일어나면 좋은 일이지만, 스스로 ‘우리는 웃기는 집단이야’라고 하는 건 너무 거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항상 사람들이 웃어 줘야만 코미디가 된다고 말한다. 안 웃으면 코미디가 아니라 그냥 말하는 거다. 그렇게 돼도 모임을 존속할 수 있도록 ‘구술문화연구회’라고 했다.

다솔: 이왕 할 거면 스케일을 말도 안 되게 키우려고 했다. ‘얘네가 뭔데 이름에 동북아까지 붙었냐’는 소리를 듣도록. ‘동북아국제’에는 포부가, ‘구술문화연구회’에는 겸손이 담겨 있다.

재용: 스탠드업 코미디는 보통 미국 문화로 인식되는데, 한국 버전을 만든다는 의미도 있다.

성은: 연남동에 작업실을 냈는데, 그 공간에서 모임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친구 중 다운이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고 공부하는 걸 하자고 하더라. 다른 친구 안평이 예전부터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고 싶다고 하고, 자기소개서에서도 맨날 그 얘기를 적는 게 생각나서 같이 하자고 했다. 세 명은 너무 적으니까 인스타그램에 같이 할 사람 있냐고 올려서 모이게 됐다.

재용: 처음엔 모일 때마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고 이야기하는 합평회를 하자고 했었다. 그런데 ‘부정충’을 맡고 있는 다솔이 그렇게 헐렁헐렁하게 해서 뭐가 되겠냐면서 첫 모임 때 각자 한 꼭지씩 이야기를 준비해 오자고 해서 시작됐다. 

안평: 처음엔 그냥 해본 말이었다. 평소에 내가 말하는 게 웃기다고 스탠드업 코미디언 해보라는 친구들도 있었다. 사실 그건 유머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평소에 많이 듣는 얘기지 않나. 그래도 나는 나를 과대평가하는 편이어서 ‘인생 삼모작을 위해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준비하고 있다’고 썼다. 그때까진 꼭 코미디언이 되겠다기보다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열심히 보는 사람에 가까웠는데, 하다 보니 진짜로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완성된 서사를 가지고 무대에 올라가서 이야기하는 게 즐거운 일이라는 걸 공연을 하면서 느꼈다.

가재: 나는 동북구연의 첫 번째 공연을 보고 들어왔다. 처음엔 스탠드업 코미디가 뭔지도 몰랐는데, 공연을 보고 반했다.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누군가를 웃길 수 있다는 게 나한텐 센세이셔널한 경험이었다. 내가 가진 불행이나 이야기를 꺼내 놓고 누군가를 웃게 만드는 단련을 하고,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다운: 처음 모임을 시작할 때, 넷플릭스에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한참 보던 중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하는 얘기의 소재는 하나같이 즐겁지 않더라. 엄청나게 끔찍한 불행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거나, 사회 문제와 불만을 이야기한다거나. 그걸 사람들이 다 같이 웃고 공감할 수 있는 영역으로 확장한다는 게 흥미로웠다. 한참 웃고 나서 곱씹어 보면 그냥 수다 떨 때 느끼는 재미와는 다른 차원의 울림이 있다. 글을 잘 쓰는 것이나 정형화되고 멋진 연설만큼이나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야기를 만드는지 너무 궁금하고, 나도 그런 능력을 갖고 싶었다.

다솔: 웃기다는 얘길 많이 듣는 편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웃긴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그걸 나의 삶에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도구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코미디는 웃긴 걸 웃기게 만들지, 다른 걸 웃기게 만들고 있지는 못하다. 슬프고 이상한 이야기가 웃겨질 때가 가장 재밌는데 말이다. 인생은 그냥 보고만 있어도 드라마보다 웃긴데, 왜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지 궁금했다. 한편으론 심각하고 중요한 얘기를 하고 싶을수록 재밌게 해야 청중이 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재미라는 도구를 잘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안평: 엄마한테 커밍아웃한 얘길 했다. 엄마가 ‘그래서 넌 홍석천인지 하리수인지’ 물어보고, ‘네가 트랜지스터냐’고 하시더라. 엄마 입장에선 나를 부정하는 건 아닌데, 정말 궁금하고 잘 몰라서 못 받아들인 거였다. ‘많이 아픈 거냐’고 물어보셔서 그러면 회사에서 ‘기분이 좀 레즈비언해서 집에 가보겠습니다’ 할 수 있는 거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다운: 나는 평생 같이 살았던 할머니 얘길 했다. 우리 집안엔 비밀처럼 숨겨 왔던 얘기가 있다. 할머니 남편은 알고 보니 고향에도 처자식이 있었고, 새로 바람이 나서 세 번째 여자까지 만나던 중이었다. 할머니가 그걸 알고 아빠를 포함해서 고모들까지 전부 다 자기 성으로 바꿔 버렸다. 50년 전에 말이다. 아빠와 고모들에겐 학창시절의 트라우마였는데, 이런 얘기를 재미있게 만들어 봤다. 할머니가 얼마나 웃기고 이상한 사람인지 한참 이야기하다가, 성을 바꾼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족보 따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말하는 식이다.

가재: 나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음담패설의 수위를 오가면서 했는데, 동북구연 멤버들과 같이 하면서 생기는 용기가 있었다. 서로 피드백을 해주고, 팀 안에서 한번 이야기가 걸러지니까 무대에 올려도 되겠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한편으론 내게 공연은 개인적으로 너무 답답했던 부분들을 해소하는 방식이었다. 용기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로 그동안 답답했던 게 있었다.

줄리아: 가재의 성장 과정을 지켜봤는데, 정말 실전형이다. 가재의 마법은 엄청난 반전이다. 예를 들어, 사생활은 문란하지만 사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그래서 가재 입에서 나오는 얘기가 재밌고, 사람들에게도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같다. 꼭 동성애자가 아니어도 말이다. 나도 가재가 그렇게 이야기를 분출하는 걸 보면서 진짜 큰 위안을 받았다.

성은: 새롬은 첫 공연에서 보이스피싱 당한 얘길 했다. 2000만 원 가까이 사기당한 얘길 하는데, 연극 배우의 독백 같은 느낌이 있었다. 정말 구술 문화처럼 옛날이야기를 잘 풀어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줄리아: 나한텐 많은 슬픔이 있었는데, 그냥 우울한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아서 코미디를 시작했다. 내가 꼽은 소재는 이혼이었다. 이혼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바꾸면서 스스로를 치유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돌싱이라는 말은 잘못됐고, 그대로 돌아온 게 아니라 업그레이드된 거니까 ‘업싱’이라고 해야 한다는 얘길 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공연 끝나고 나서나, 인스타그램 디엠으로 ‘저도 사실 업싱인데’ 하면서 연락이 와서 소통의 창구가 되더라.

재용: 스탠드업 코미디는 좋은 자기 객관화 툴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모여서 하는 얘기는 어떻게 보면 심리 상담에서 할 법한 얘기다. 그래서 엄청난 유대감이 생긴 것 같다. ‘운영한다’는 걸 넘어선 게 아닐까.

다솔: 지금 우리 멤버들 조합이 너무 좋다. 다 다르고 이상한데 잘 맞는다. 아마 다들 느끼고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만나긴 쉽지 않다는 걸. (웃음) 부정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도 적당히 있어서 필요할 때마다 밸런스를 잘 조절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린 서로에게 굉장히 예의바른 모임이다. 서로 바쁜 것도 알고, 어떤 마음인지도 안다.

성은: 초반엔 2주에 한 번은 무조건 만났다. 그리고 앞에 나가서 5분씩 얘기했다. 이 방법은 다른 모임에서도 써봤는데, 처음엔 다들 할 말 없다고 어려워하지만 막상 시간을 주면 다 자기 얘길 하더라. 그런 식으로 운영하다가 서로 익숙해졌을 때쯤 공연이라는 목표를 만들어서 열심히 준비했다. 공연을 해내면 ‘진짜 되네’ 하면서 기뻐하고.

다운: 우리 같은 조합이 다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얘긴 아니다. 누구든 보편적으로 이런 모임을 하면 좋겠다. 이해관계로 얽히지 않은 사람들끼리의 유대 관계가 주는 안정감이 있다.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소재로 하는 내밀한 만남이 충만함을 주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이어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공연 때 얘기했던 나의 할머니와 아빠는 우리 가족 얘길 했다는 걸 듣고 처음엔 놀라고, 화도 내셨다. 그런데 나중엔 ‘나한테도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하시더라. 손가락질 당할까 봐 털어놓지 못했고, 위로도 받지 못하고 사셨던 거다. 나에겐 할머니만큼의 비극을 겪더라도 그걸 기꺼이 이야기할 수 있고, 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일이든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안평: 다솔이 저번에 8년 뒤엔 헤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다솔: 왜 그랬더라. (웃음)

안평: 그냥 정했던 것 같다. 일단 8년은 계속할 예정이다.

다운: 나는 얼마 전에 재용과 새롬의 결혼식을 하고 나서 우리 관계가 다른 단계로 진입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까지는 코미디가 사이드 프로젝트라 우리 8명이 월드 투어를 다니는 일은 쉽게 오지 않을 거 같다. 대신 각자가 생애 주기를 겪는 과정을 함께하게 될 거다. 나는 새롬의 코미디 파트너가 아니라 아이를 봐주는 베이비시터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코미디는 8년 하고 해체할 수 있지만, 생애 주기를 함께하는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솔: 요양원까지.

재용: 맞다. 나는 이빨이 다 빠질 때까지 하고 싶다.

다운: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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