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s; 치매 환자를 치유한 최초의 로봇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기술을 최대한 숨겼다.

2024. 7. 31.

치매 환자를 치유한 최초의 로봇 (上)

시바타 타카노리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 수석 연구위원

게시하기

웹에서 보기

로봇과 사람이 감정을 교류할 수 있을까. ‘교류’라는 언어는 아직 적합하지 않을 수 있지만, 로봇은 우리의 감정을 고양하고 이를 이용해 치유의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을 가장 처음 현실로 만든 사람이 바로 시바타 타카토쿠 일본 도쿄공업대학 정보공학부 교수다. 시바타 교수가 개발한 물개형 로봇 파로(PARO)는 2009년 미국 식품의약청(FDA)으로부터 신경 치료용 의료 기기로 승인을 받으며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치매 환자와 자폐증 환자를 대상으로 제작된 파로는 처음부터 돌봄을 ‘받을’ 목적으로 개발됐다. 갓난아기 정도의 크기로, 하얀색 새끼 물개 봉제 인형이다. 쓰다듬어 주면,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거나 뒤척이는 것이 기능의 전부다. 하지만 환자들은 파로를 돌보며 치유 받는다. 비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정립해야 하는 지금, 시바타 교수의 인사이트가 필요하다. 2주에 걸쳐 북저널리즘 talks가 전한다.

🥗 톡스 뉴스레터 구독하기

수많은 반려동물 로봇이 개발되고 있지만, 파로만큼 인간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으로 입증된 로봇은 없다.

파로는 반려동물처럼 사람과 함께 생활하며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로봇이다. 그만큼 퀄러티가 높다. 근거에 기반한 치유 효과를 보여준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가 아닌,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회에 널리 보급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근거에 기반한 치유 효과라는 것이 무엇인가?

‘애니멀 테라피’라는 개념이다. 이를 바탕으로 1993년부터 ‘로봇 테라피’를 위해 파로 개발 및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울증 등의 치료를 위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치료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파로도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로봇을 목표로 한다. 특히, 수명이 한정된 반려동물과는 달리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할 수 있는 로봇으로 만들고자 ‘Best or nothing’ 철학을 도입했다. 그 결과 소모품 교체와 같은 유지보수만 잘하면 20년 이상 함께 생활할 수 있다. 극저온에서 고온에 이르는 극한 환경에서도 장기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 제조, 품질 관리 등이 이루어진다. 또, 최고급 자동차에 사용되는 고품질의 부품을 사용한다. 안전을 위해 전자파 차폐도 당연히 적용됐다.

동물을 치료에 이용하는 대신, 그 역할을 로봇이 맡도록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로봇을 동물로 느낄 수 있을까?

사용자에게 최대한 기술을 숨기는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최고 품질의 소재와 제조법을 고집한다. 모두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수작업으로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파로의 외피는 봉제 인형이다. 하지만 우리의 제작 방식을 설명하면 업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놀라워한다. 단적으로, 파로를 아무리 살펴봐도 봉제선이 드러나지 않도록 제작하고 있다. 동작 시 나는 기계 소음도 들리지 않도록 제작했다. 파로를 생명으로 대할 때 위화감이 들지 않도록 정성을 들였다.

그런 정성이 실제로 효과를 거두고 있나?

파로의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례가 쌓여있다. 예를 들어 시설에 입소해 있는 치매 환자 중 간병인에게 명령조로 대하거나 불쾌해지면 시설의 원장을 불러오라고 호통을 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환자에게 파로를 건네면 안아주고, 돌보는 가운데 기분이 풀린다. 간병인에게도 친절해진다. 우울 증상을 보이는 환자의 경우도 파로를 만나며 활기를 되찾고 대화까지 가능해졌다. 요양 등급도 (일본 기준) 3등급에서 1등급으로 호전된 경우도 있다.

2021년, 독일의 한 요양원에서 입소자들이 ‘파로’를 만나고 있다. 사진: Waltraud Grubitzsch/picture alliance via Getty Images

아무리 그래도 움직이는 물개 인형이다. 그렇게 놀라운 효과를 내는 까닭은 무엇일까?

치매 환자에게 파로를 씻겨달라 부탁하면 즐거워한다. 파로의 인조털을 씻기고 칫솔질도 해 준다. 파로를 직접 돌보거나 무언가를 가르쳐 주면서 뿌듯함을 느끼고 기쁨을 느낀다. 일시적인 인지 기능 향상으로 대화 능력이 회복되는 등의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돌보는 역할을 함으로써 뇌가 활성화하고 건강해지는 효과가 있다.

효과가 데이터로도 증명되었나?

파로는 미국, 유럽, 영국, 호주, 싱가포르, 홍콩에서는 ‘의료기기’로 인정받았다. 소아부터 노인까지 치매, 암, PTSD, 뇌 손상, 파킨슨병, 발달장애, 뇌성마비 등의 환자 및 장애인을 감정적으로 보조하고, 불안, 통증은 물론 폭력과 폭언, 배회 등을 포함한 흥분 증상 등을 완화하고 개선한다. 임상시험은 치매를 대상으로 한 결과가 많다. 약 900건의 임상 연구 논문이 있다.

연구 결과는 어떠한가?

12건의 무작위 비교 시험을 메타 분석한 결과, 파로와의 만남을 통해 치매 환자들의 행동-심리 증상 개선, 사회성 향상, 약물 투약량 감소 등이 나타났다. 또, 영국의 임상 진료 ‘NICE 가이드라인’에는 치매 분야에서 유효한 근거가 있는 비약물 요법으로 파로가 단일 등재되어 있다. 이에 따라 영국에서는 파로를 보유하고 있는 병원의 경우 파로를 이용한 증상 개선을 먼저 시도해 본 후 효과가 없으면 약물 투약으로 넘어가게 된다.

효과는 충분히 검증되었다는 얘기다. 다만, 이런 역할을 꼭 로봇이 해야 할까? 사람이나 동물이 할 수는 없을까?

물론, 사람이나 동물이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파로는 치료에 특화된 로봇이다. 누구든 필요할 때 쉽게 사용할 수 있다. 간호사가 흥분한 환자를 진정시키려다 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 환자에게 향정신성 약물을 투약하면 각종 부작용은 물론, 중독 위험도 있다. 동물의 경우 감염, 물거나 할퀴는 사고, 알레르기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으며 동물에게 지나친 부담을 안기게 될 수도 있다. 파로는 이런 문제들로부터 자유롭다.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5시간에서 8시간 정도 지치지 않고, 피곤한 기색 없이, 불평도 없이 계속 자기 일을 수행한다. 로봇의 장점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런 로봇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안은 없을까. 예를 들면, 생성형 AI 같은 기술 말이다. 거대 언어 모델(LLM)을 이용하면 파로의 가능성이 크게 확장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인간이 안심하고 반려동물에게 마음을 열고 말을 거는 까닭은 반려동물이 인간과 언어적 대화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파로는 음성 인식 기능이 내장되어 있어 간단한 단어 정도는 인식하고 반응한다. 또한 따로 이름을 지어주고 반복하여 불러주면 학습하고 반응한다. 물론, 고해성사처럼 인간의 언어로 반응해 주는 과정에서 치료 효과를 느끼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다만, 파로에 적용했을 때도 마찬가지일지는 새로운 임상실험이 필요할 것이다.

로봇이나 AI가 인간과 감정적 교류를 하거나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비인간 존재와 인간이 관계를 맺고 안전한 교감을 이루기 위해 기술 개발자들은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할까?

‘윤리’ 문제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연구 개발과 병행되어야 한다. 파로의 경우를 예로 들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덴마크가 국가 프로젝트로 치매 치료에서 팔로의 효과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할 당시 2007년 국가 차원에서 윤리 자문위원회가 개최되었고, 파로와 같은 ‘소셜 로봇’의 도입과 관련된 논의가 6개월간 진행된 바 있다. 또, ‘신체성’이라는 부분도 주의 깊게 고려할 포인트다. 90년대 중반 MIT에서 연구할 당시 연구소 소장이었던 로드니 브룩스 교수 (iRobot 설립자) 등이 임바디드 AI(신체성 AI)를 주창한 인물이다.

AI가 물리적인 하드웨어를 갖게 되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가 달라진다는 뜻일까?

최근 미국의 테크 기업 등이 로봇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생성형 AI의 끝이 보이기 때문에 그다음 테마로 임바디드 AI로 전환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한다. 그럼, AI가 준비한 세계에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느냐를 따져보자. 인간이 VR을 통해 시각과 청각 등을 자극받더라도 한계는 있다. 하지만 물리적인 하드웨어를 가진 로봇이나 드론이 인간의 아바타가 되어 다양한 센서를 통해 감각과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인간이 수용하게 되면 몰입의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반대되는 예시도 있다. 드론 무기를 원격으로 조종하는 군인은 매우 안전하다. 동시에 공격이 이루어질 곳의 환경이나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한 현실적인 정보도 적기 때문에 심리적 죄책감을 덜 수 있다. PTSD도 예방할 수 있다. 반격을 당해도 부서지는 것은 드론이므로 신체적으로도 안전하다. 그런데 공격을 받는 쪽은 전혀 다를 것이다.

AI 로봇과의 관계성은 입장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등의 군 관계자들은 드론 무기를 ‘인도주의적 무기’로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피해를 당한 측에서 보면 이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다. 극단적인 예일 수도 있지만,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서 드론이 활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 다음주에 인터뷰 후반부가 이어집니다.

글 신아람 에디터

💌 북저널리즘 신간 소식

눈을 뜰 때부터 감을 때까지 현대인은 알고리즘에 예속됩니다. 챗GPT와 좋아요, 추천 알고리즘의 시대에 인간의 노동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알고리즘은 편리합니다. 알고리즘 위에서 우리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선택하지 않아도 됩니다. 플랫폼 기업들은 이런 편리함을 수수료로 변환해 왔습니다. 우리의 인지와 선택을 자동화하면서 주목이라는 추상을 가치로 바꿔온 것입니다.

노동만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선택은 0과 1로 데이터화되고 수치화되며 청중의 정체성을 조작해 나갔습니다. 제조된 청중이 된 이들은 더 많이 노동하고, 더 많이 소비해야 했습니다. 이 끊임없는 알고리즘 자본주의는 곧 인공지능의 시대로 들어섭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초입에서, 우리는 지금 다시 알고리즘 노동을 사유해야 합니다

🙋‍♀️ 생성형 AI에 지지 않는 나를 만들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