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수해가 있었다. 인프라는 재난 앞에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무너졌다. 철근 누락임이 드러나 ‘순살’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새마을금고가 흔들렸다. 뱅크런은 면했지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위험성이 부각됐다.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이 문제들은 어떻게, 왜 생겨났을까? 건설사가 도산하는 시대, 압구정과 강남은 왜 재건축 열기로 뜨거울까? 북저널리즘의 아흔여섯 번째 종이책 《재개발의 정치학》을 쓴 김민석 저자에게 물었다.

부동산을 다룬 책은 투자 실전서나 전공 서적, 인문학적 비평이 주를 이룬다. 《재개발의 정치학》은 어떤 책인가?

제목처럼 재개발만 다룬 책은 아니다. 도시 계획의 큰 흐름을 짚으며 거기에 참여하는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 사이의 갈등과 동맹, 배신을 중심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예시로 든 책들과 비교하자면, 투자 서적은 결괏값을 이야기하는 책이지 않나. 부동산 어디가 오르고 떨어지는지, 언제 투자하고 언제 팔아야 하는지 등. 이 책은 결과보다 과정과 이유를 사고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 하겠다. 어딘가에 투자한다면 왜 해야 하는지, 특정 사업이 지연되는 이유는 뭔지. 한편 내가 사는 곳이 어떻게 계획되고 형성된 곳인지 그 구조와 역동을 설명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해 당사자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한 이유는 무엇인가?

도시 계획을 이해하는 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도 중요하고 사업의 이익이나 손해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업성은 상황에 따라 바뀐다. 예로, 재건축 현장도 5년 전과 10년 전의 상황이 전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결국 사람 혹은 주체가 뭘 원하는지가 핵심이라고 봤다. 현장에 있어 보니, 파트너가 된 이해 당사자들은 과연 서로 믿을 만한 주체들인지, 이들은 왜, 어떻게 이해관계를 같이하고 달리하는지를 아는 게 사업의 핵심이라고 느꼈다. 도시 계획에서 만들어지는 갈등과 합의는 이들의 이합집산에서 탄생한다.

현직 시행사 실무자다. 디밸로퍼가 써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

도시 계획을 지금 깊이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책에서 “도시 계획은 정치의 극한”이라고 짚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무엇인가?

책 앞부분을 비중 있게 할애한 은마아파트 등 재건축 사례가 아닐까 싶다. 27년이 넘게 재건축 논의가 지지부진했던 이유를 따라가다 보면 인허가권자인 공공의 입장과 정치적 가치관의 접점, 조합 등 민간의 입장과 내부의 수 싸움, 욕망과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 비리와 소송전을 만날 수 있다. 오는 8월 중순에 드디어 재건축 조합을 설립한다는데 조합 설립 후에도 숱한 전장이 기다리고 있다. 일단은 층수도 49층으로 더 높게 지으려고 하니 인허가를 다시 받아야 하고, 시공사 선정 문제부터 그 후의 비용과 소송의 문제까지 첩첩산중이다.

부동산 침체의 공포가 확산하지만 결국 부촌은 부촌이다. 부동산 경기가 어려울수록 격차는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최근 강남과 여의도 등의 재건축 열기는 서울시의 ‘신속 통합 기획’ 때문이다. 각종 정비 사업의 인허가를 간소화하는 게 골자다. 도시를 누가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이 모든 현상이 심화할 수도, 완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공공의 권한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사례도 있었다. 압구정 재건축의 설계 공모전에 희림이라는 업체가 조합 투표로 설계권을 따냈는데 서울시는 희림이 용적률 가이드라인을 어겼다며 고발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한쪽에선 건설사가 도산한다는 뉴스로 떠들썩하다. 업계의 분위기는 어떤가?

업계라고 해도 부동산 위기라는 상황 앞에 처지는 각양각색이다. 어떤 곳은 타격이 없고 어떤 곳은 직격탄을 맞아 다음 달 직원 월급을 주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원자잿값이 올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콘크리트, 시멘트, 철근, 내외장재, 유리 할 것 없이 전부 올랐다. 부동산에서 매출은 결국 분양가다. 공사 원가는 올랐는데 매출은 그대로인 상황인 것이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 딜레마다. 책에도 언급하지만 결국 건설사는 뭐가 됐든 수주를 해야 먹고 산다. 그런데 지금 같은 상황에 수주를 잘못했다가는 미분양으로 큰 리스크를 질 수 있다.

건설사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옵션은 없나?

건설사가 힘든 이유는 분양가 상승률이 매매가 상승률보다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건설사나 시행사는 분양으로 돈을 버는데 구매자는 분양가가 오르면 구매 동인이 적어진다. 사실 분양가를 경쟁력 있게 낮추려면 땅값이나 건설 원가가 떨어지면 된다. 땅값은 떨어지기 어려우니 디폴트라 치자. 원자잿값이 오르면 다른 원가를 조정해 분양가를 낮출 수 있고, 아니면 이윤을 낮춰서라도 사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윤을 포기하려는 곳은 없다. 거기다 주택의 고급화 경향까지 더해지니 분양가가 낮아질 수가 없는 것이다. 부동산과 건설업계의 근본적 한계다.

여담이지만 기술을 통한 원가 절감은 불가한가?

부동산 시장 침체는 곧 금융권의 위기다. 최근 부동산 PF로 인해 새마을금고가 휘청이기도 했는데 디밸로퍼로서 이 사태를 어떻게 봤나?

투자든 사업이든 그 이익과 손해는 기본적으로 당사자의 책임이다. 대출 기관의 투자 방식에 내부 검토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근본 원인을 파고 들어가면 시행 업계의 고질적 비즈니스 모델로 환원하게 된다. 한국은 시행 사업에서 레버리지가 지나치게 높다. 전체 사업비의 1~2퍼센트만 있어도 사업비를 조달할 수 있다. 연대 보증에 채무 보증을 서며 대출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부동산 대출을 무한히 연장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뒤로 미룰 순 있지만 해결할 순 없다. 결국 누군가 분양을 받아야 해결되는 문제기 때문이다.

해외는 레버리지 구조가 다른가?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레버리지가 낮아 현금을 꽤 들고 있어야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이는 대형 건설사 독식 구조로 이어지긴 하지만 사업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반면 한국은 레버리지를 극단적으로 쌓아 올려 건물을 짓는 사업 구조다. 이익은 소수의 사업 주체들에게 돌아가지만 그게 잘못됐을 경우 그 부채가 한 번에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새마을금고든 시중은행이든 PF에 들어간 돈은 결국 은행에 저축한 시민들의 예금 아닌가.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말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렇게 돈을 끌어와 지어도 순살, 통뼈, 침수 아파트 등 부실시공 논란이 터진다. 이유는 무엇인가?

감리 업체의 문제도 지적된다. 이들은 왜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나?

오세훈 서울시장은 새로운 건설 현장에 대해 시공 과정을 100퍼센트 동영상으로 기록하자고 제안했다. 실효적인 해법인가?

중대재해처벌법과 비슷한 구조라 본다. 필요하고 중요한 조치지만 소규모 업체에 가혹하다. 브랜드 아파트에서 부실시공 논란이 있긴 했지만 이미 1군 시공사들은 안전에 관한 다양한 조치를 하고 있다. 감리 업체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매일 업무 일지를 만드는 것인데 여기에 기본적으로 늘 사진 촬영을 하게 돼 있다. 하지만 아무리 사진이나 영상을 남겨도 ‘괜찮겠지’하고 시공해 버리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순 없다.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조합이나 공공 등 발주처가 도면과 사진만 보고 철근이 몇 개 들어가야 적정한지 등을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실시공 문제는 인프라의 경우 더 치명적인 것 같다. 안타까운 수해도 있었고 다리가 무너지는 사고도 있었다. 인프라는 왜 재난에 대응하지 못했나?

왜 유지·보수·관리가 잘 안 되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단적으로 말해 ‘원하는 사람이 없어서’다. 우리가 인프라를 당연하게만 생각할 게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시가 만들어질 때는 건물만 짓는 게 아니라 도로, 교량, 상하수도 등이 함께 만들어진다. 짓고 나면 구조 안전 진단 등을 통해 계속 돈을 쏟아 관리해야 하지만 사실 그 과정은 누구도 이익을 보기 어려운 구조다. 국민의 안전이 등한시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9호선이나 GTX 등 요새 많은 사업이 민간 투자 사업(BTO)으로 이뤄진다. 사업성이 있어야 관리에도 돈을 쓰기 때문이다.

공공 인프라라면 결국 세금을 써야 하는 문제 아닌가. 왜 지자체는 이에 소극적이었나.

사회 간접 자본(SoC) 예산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처음 인프라를 깔고 나면 그다음엔 여타 사회 복지 비용에 많은 돈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자체는 점차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명목 아래 비용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굵직한 사업도 아니고 티 나지 않는 돈이니 더 안 쓰려 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한강에만 다리가 28개고 이 중 30~40년이 넘어간 게 절반이 넘는다. 신도시의 인프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뭘 지어도 이익이던 성장 시대의 후폭풍을 겪고 있다. 우리가 도시 계획에 무관심하면 사고는 반복될 것이다.

앞으로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도시 계획은 어때야 하나?

사회적 참사가 계속되고 있다. 돈 안 돼도 사회 구성에 필수적인 인프라는 급격히 노후화하고 있고, 일부 부촌에는 엄청난 돈이 몰리고 있다. 균형 있는 예산 분배가 필요하다. 참사의 희생자는 늘 보통의 시민이고 아파트 부실시공의 피해자도 결국 소유자가 아니라 입주자다. 개발 사업에 얽힌 이해 당사자의 욕망을 조정할 의무는 도시 계획에 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기후 변화는 이미 우리 일상이 됐다. 이에 맞춰 설계 기준이 바뀌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세계의 흐름에 맞게 더 친환경적이고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법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본다.

각종 토건 사업이나 도시 계획에 관련한 뉴스를 볼 때 우리가 중점적으로 볼 것은 무엇인가?

책에서 다루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누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누가 원하는가,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고 반박하고 있는가를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발 사업은 정의와 불의의 이분법을 대입하기 어려운 전장이다. 한 사업에서도 서로가 문제시하는 바가 다르고 매체 별로 뉘앙스가 다르다. 도시 계획의 구조를 잘 살펴 뉴스 이면의 문제를 읽어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