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alks; 교통으로 도시 문제를 들여다보다

교통과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우리 앞에는 기후 위기가 도래했다.

2023. 5. 30.

교통으로 도시 문제를 들여다보다

《오송역》 저자 전현우 (교통·철학 연구자)

지금 내가 배가 고픈 것도, 취업이 되지 않는 것도, 불행한 것도 도시 탓일 수 있다. 도시를 어떻게 만들지에 따라서 삶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통학을 위해 두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면서는 밥을 챙겨 먹을 수 없다. KTX와 지하철을 세 번씩 갈아탄 후 보는 면접에서는 100퍼센트의 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 외곽에서 도심까지 꽉 들어찬 버스를 매일 한 시간씩 타야만 하는 통근자는 불행하다. 이 모든 문제는 도시와 도시를 중심으로 한 교통 시설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이 문제를 세종시 근처 충북 청주 오송읍에 있는 고속철도역 오송역에서 발견하고 분석한 사람이 있다. 신간 《오송역 : 이상한 분기역의 비밀과 오차 수정의 길》(도서출판 이김, 2023)을 집필한 교통·철학 연구자 전현우를 만났다. 도시와 교통은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물었다.

과학철학을 전공했다. 수많은 문제 중 교통에 집중한 이유는 무엇인가?

교통과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상은 물론 특별한 순간에도 이동은 필요하다. 여행이 인생의 전기가 되는 경우도 많고,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도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주인공이 무언가를 타고 움직인다. 다른 세계로 나아가 일상도, 인생도 바꿀 수 있는 힘을 이동은 준다. 또한 교통은 다양한 물리적 기술과 자원이 동원되는 활동이다. 교통망에 따라 개인의 삶뿐 아니라 사회 전체도 달라진다. 교통은 결국 사회 거의 모든 문제의 압축판이 된다. 그런데 우리 앞에는 기후 위기가 도래했다. 이동을 대폭 축소해, 삶을 쪼그라뜨릴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어디까지 이동할 수 있는지, 한계선에 대한 논의다. 지적 자원을 모두 동원해서 사람들이 무엇에 합의할 수 있을지 바닥부터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보았다. 그 작업을 지금까지 출간한 《거대도시 서울 철도》(워크룸 프레스, 2020),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민음사, 2022), 그리고 《오송역》에 담았다.

지금 도시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자동차 위주의 도시로 짜여 걸을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책에서는 ‘납치된 걷기 공간’으로 명명했는데, 자동차가 지배하는 도시를 구성하는 단위를 말한다. 먼저 도로 위에서 보행자는 승용차에 비해 약자다. 자동차가 빵 하고 클랙슨을 울리면 보행자는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구석에 있다가 승용차가 으스대면서 지나가고 나면 다시 겨우 길로 나올 수 있다. 대규모 건축물 단위로 가면, 하남 스타필드 같은 대형 쇼핑몰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쇼핑몰은 하루에도 수만 명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걷기 공간이다. 그런데 대형 쇼핑몰은 주변의 도시 공간과 단절되어 있다. 승용차로 들어와서 승용차로 나가지 않나. 직원조차 대중교통을 타기 어렵다. 내부적으로는 좋은 걷기 공간이지만, 자동차 전용 도로에 포위되어 주변 도시 조직 및 대중교통망과는 단절되어 있다. 이런 납치된 걷기 공간으로 이뤄진 모자이크 도시에서 살아가려면, 결국 승용차가 필수품이 되고 만다.

하지만 자동차 도시를 벗어나는 게 가능할까? 무엇보다 자동차는 도어 투 도어(Door-to-Door)를 가능케 하는 편리함이 있지 않나?

뭐든 과도하면 독이 된다. 혼잡비용이라는 말이 있다. 도로를 메운 차량이 서로의 앞을 막아 일어나는 지체 비용을 말한다. 교통 정체로 인해 도로에서 더 보내게 된 시간 그 자체가 사회적 비용이다.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 남들의 행동과 선택을 욕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요새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는 말도 쓰이지 않는 것 같다. 이제 차량 비용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자 나라가 됐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자동차가 부자병의 원인이라는 점을 주목하는 게 좋다. 당뇨, 심뇌혈관 발생의 상대위험도는 물론 전체 사망률도 대중교통 통근자가 더 낮았다는 메타 연구가 나왔다. 왜? 대중교통을 타려면 앞뒤로 무조건 걸을 수밖에 없다. 대중교통 이용은 곧 역학(epidemiology)에서 말하는 ‘활동적 통근(active commuting)’을 유도한다.

하지만 사람이 꽉 들어찬 지옥철에 실려 가는 경험은 끔찍하다.

어려운 문제다. 차 안에서 운전 스트레스에서 시달리는 게 그나마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걷는 일이 지옥철 앞뒤로 더해진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의학계는 여가시간에 운동을 따로 하게 만드는 것보다, 생활 속에서 더 많이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효과가 있다고 본다. 대중교통 수단을 활용하면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 사회적으로는 지옥철 상황을 완화할 수 있는 적재적소의 철도 투자와 근무 제도 개편을 요구해야 한다.

대중교통 정책은 어떻게 보는가? 독일 ‘9유로 티켓’의 실현 가능성이 우리에게도 있을까?

대중교통에 보조금을 붓는 것은 재정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 혼잡통행료와 주행세 등 자동차 부분의 세금을 기본으로 하되, 적어도 수도권 같은 거대 도시(megacity)에서는 대중교통 운임을 자급하는 게 맞다. 독일에서 9유로 티켓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코로나19 이후 첫 휴가철이었다는 맥락이 있다. 코로나19 동안 대중교통 수요는 다 자동차로 빠져나갔기 때문에 다시 대중교통 수요를 올려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녹색당이 집권당 연정에 참여하고 있으니 더욱 수월했다. 무엇보다 독일에는 수도권 규모의 메가시티가 없어 보조금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자동차 위주의 도시는 어떻게 수정할 수 있을까?

자동차 위주로 이미 짜인 공간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수십 년 뒤, 장기적인 지향점을 ‘확장된 걷기 공간’이라고 이름했다. 동네에서는 걷되, 걷기 힘든 거리는 공공교통을 매개로 이동할 수 있는 도시. 이를 위해 필요한 지점에서는 과감히 투자하고, 더불어 자동차에 쓰이는 대로는 대중교통, 보행자, 자전거를 위해 더 많은 부분을 할당해야 한다. 적어도 수도권 고속도로 투자는 동결할 필요도 있다. 도시가 마구 확산되는 스프롤(sprawl) 현상의 원인이다. 지방의 경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탄소 중립을 위해서는 공공교통 분담률이 지금보다 배 이상으로 늘어야 한다는 연구가 많다. 확장된 걷기 공간은 선택이 아니라 기후 위기 시대 모든 도시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

수많은 곳 중 오송역을 소재로 책을 썼다. 오송역은 어떤 곳이고,《오송역》은 어떤 책인가?

오송역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서울에서 출발한 고속철도 노선상 호남선과 경부선이 갈라지는 분기역이다. 동시에 세종시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한다. 오송역이 분기역으로 결정되기까지 10여 년간 사회적 논란이 있었다. 2005년, 박근혜가 대표로 있던 한나라당이 당론으로써 오송 분기론을 채택하고 최종적으로 오송역이 분기역으로 결정된다. 《오송역》은 그 분기 과정의 역사와 오송역 주변의 모든 길을 다루었다.

오송역사. 오송역은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버스 환승센터로 이어진다. 여기서 버스를 통해 정부청사가 있는 신도시 세종, 충청북도의 대도시 청주 시내 방면으로 갈 수 있다.

1장 1절의 제목은 ‘불만의 여행’이다. 오송역의 무엇이 문제이기에 그런가?

오송역의 두 번째 역할, 세종시의 관문역인 것과 관련한다. 여기서 불만의 여행이 시작된다. 세종시에 가려고 KTX를 타는 사람이 오송역에서 내려 세종시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차역에서 다시 BRT 버스를 타야 한다. 버스를 타는 시간만 20분 정도고, 대기 시간까지 해서 30~40분 정도가 걸린다. 시간도 그렇지만, 경로가 여기저기로 꺾인다. 수도권에서 출발해도, 영남이나 호남에서 출발해도 오송역을 거쳐 세종시를 가려면 가던 방향에서 70~180도를 꺾어야만 한다. 경로가 이상해진다.

세종 고속철도망의 경로 약도. 수도권발 통행은 우측 70도 이상, 영남발 통행은 135도, 호남발 통행은 방향을 180도 전환해야 오송역에서 세종시로 들어갈 수 있다. ⓒ도서출판 이김

오송역에서 세종시로 들어가는 길들이 과하게 꺾여 있다.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설계되었나?

불만의 여행은 의도된 것이다. 세종시는 공공조직을 중심으로 해서 수도권으로부터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해 설계되었다. 그런데 교통이 편하면 사람들은 이주가 아니라 출퇴근하기를 택한다. 그래서 살짝 불편한 수준으로, 매일 오가기엔 번거로운 교통로를 만들어 이주의 동기를 만든 거라고 본다.

일부러 도시와 철도역을 떼어놓고 지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그 틈새는 도로가 메우고 있다. 세종시로 가려면 결국 도로를 이용해야 하니까. 그런데 세종시의 내적 목적은 대중교통 도시였다. 대중교통 수송 분담률 70퍼센트가 목표였다. 하지만 광역, 전국 대중교통이 허술하니, 결국 자동차가 지배하는 도시가 되었다. 탄소만 문제가 아니다. 정부 청사와 상가 주변 도로는 모두 불법 주차에 시달린다. 철도역은 최대의 대중교통 거점이다. 세종시가 참조했다는 유럽 도시들은 대부분 중앙역이 중심을 잡는다. 이걸 빼버린 채 대중교통 중심의 도시를 건설하는 건 차포 떼고 장기를 두는 격이다.

세종시의 인구 분산 효과가 충분하다면 괜찮은 선택 아닌가?

지난 10년 동안 세종시로 순 이주해 온 사람은 26만 명이다. 그 가운데 3분의 2는 충청권에서 들어왔다. 보통 이주를 뜬금없이 먼 데로 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건 당연한 일이다. 같은 기간 수도권에서 세종시로 순 이주해 온 사람은 6만 명이다. 한편 영호남과 강원도에서 세종시로 순 이주해 온 사람은 4만 명이다. 이들은 정말 새로운 도시가 생겨서 이주해 온 사람들로, 균형 발전이나 수도권 인구 분산과 상관없이 세종시가 생겨서 나타나는 효과다. 즉, 영호남과 강원도에서 이주해 온 인구는 수도권 이주자들의 대조군이 되는 셈이다. 둘의 차이는 2만 명 정도다. 순 이주자 2만 명이라면, 철도망과 도시를 일부러 떨어뜨려 불러온 효과 치고는 초라하다는 생각이다.

오송역 분기역 결정에 대한 접근 방식으로 성공과 실패가 아닌, 오류와 오차의 관점을 택했다. 어떤 접근법인가?

‘성공’, ‘실패’라는 말을 마치 사실을 기술하는 단어처럼 사용하지만, 이들은 하나의 관점을 전제로 한 평가이다. 오송역에 대해 인터넷에서는 ‘실패’했다고 보는 관점이 우세하고, 오송역을 쉽게 비웃는다. 반면 충북은 이를 ‘성공’의 관점에서 본다. 오송역에 세워진 유치 기념비에서는 오송 분기역 유치를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성공작, 충북 승리의 드라마라고 말한다. 결국 둘 다 각자의 신화에 기댄 평가이다. 좀 더 건조하게, 실제로는 목표와 실제가 어긋나는 오차가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 좋다. 정책에서 오차는 필연이다. 오차를 수정하기 위해 뭘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이, 특정 관점을 전제로 하는 ‘성공’, ‘실패’ 평가보다 더 낫다.

오송역사 인근에 세워진 고속철도 오송역 유치 기념비

세종시에서는 2013년부터 세종역을 신설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으로 오차를 수정할 수 있을까?

세종시 내부에 철도망을 연결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철도망 하나만으로 돌파구가 열리지는 않는다. 가장 결정적인 해법은 하나의 사업 단위나 물리적인 구조물이 아니라, 전반적인 방향 전환이다.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다른 방향의 투자가 필요하다. 지금 세종시는 ‘노잼 도시’다. 다른 산업 없이 공무원만 있는 도시라는 뜻이다. 지역 균형 발전을 원하면 결국 이를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한 연결 보강이라는 맥락에서 세종 관통 고속철도 노선과 광역망 계획을 제안한 것이다.

현재 개발 중인 오송역 인근의 모습. 우측 도로 너머로 오송역사가 보인다.

오송역 주변을 개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먼저 세종과 청주 방면 전국망 연결은 앞으로도 수십, 수백 년 동안 필요하다. 오송이 발전한대도 세종과 청주가 없어질 리는 없지 않나. 더불어 오송역 인근은 이미 개발 중이다. 질병관리청은 물론, 대규모 바이오 제조업 단지도 조성되어 있다. 그런 큼직큼직한 개발은 충북에서도 잘 해 왔다. 나는 역 주변을 대중교통과 보행 천국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오송역 주변은 곧 주차장이고, 농경 시대부터 있던 취락을 밀어버리고 바닥부터 도시를 새로 짓고 있다. 효율성만 봐도 문제가 크다. 새 철근과 콘크리트를 덜 쓰는 것이 곧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길이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주차장은 아무리 넓혀 봐야 공간만 잡아먹는다. 게다가 오송역 주차장들은 담합까지 적발될 정도로 배짱 장사 중이지 않나. 독점, 불법 주차를 방치할 게 아니라, 대중교통을 역 접근의 디폴트로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오송역 사례를 통해 본다면, 도시 개발은 어떤 모습으로 이뤄져야 할까?

옛 동네를 가능한 유지하면서, 이를 재미있게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요새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서울 동네의 특징을 살펴보자. 도보 시대에 지어져 걷기 좋은 동네, 조금 걸어도 풍경이 바뀌고 조금 지저분해 보여도 다양성이 있는 동네다. 반듯이 구획되고, 걷기 힘든 규모이며, 모든 것이 구별되어 있는 신도시는 뒷순위다.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인기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라. 아늑한 느낌은 물론, 무엇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데서 오는 재미도 있다. 집필하면서 오송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살폈다. 무관심 속에 방치된 구읍도 여러 번 찾았다. 답사에 동행한 분들이 이 동네의 집들에 담긴 따뜻한 풍경이 사라진다는 데 안타까움을 표했던 기억도 있다. 이걸 없애고 수도권 신도시를 복사 붙여넣기 한다고 도시 경쟁력이 치솟아 오른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글 백승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