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와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만큼 콘텐츠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공영 방송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가?

하루에도 KBS 관련한 기사가 몇 건씩 나온다. 지금 KBS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정 지난해 정권 교체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이사진 구성이 변했고, 교체된 이사회가 사장을 해임했으며, 현재 새로운 사장 선임 과정에 들어가 있다. 전기 요금과 통합 징수하던 TV 수신료는 분리 징수하는 것으로 시행령을 바꾸었다. 그 결과 8~9월 두 달 간 수신료 수입이 약 56억 원 감소했고 징수율은 각각 8월 96퍼센트, 9월 94.3퍼센트로 떨어졌다. 이번 정부만의 일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도, 문재인 정부 때도 똑같은 상황은 있었다. 이는 특정 시기 특정 사안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 한 번 더 깊게 생각하며 들여다봐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다. 정권 교체기마다 탈출구 없는 무한 루프처럼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홍종윤 (이하 ‘홍’) 가장 뼈아픈 지점은 늘 같은 문제가 반복되기 때문에 시민들의 피로감은 누적돼 있고, 청년 세대는 자신의 삶 속에서 KBS의 존재감이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KBS의 주인이어야 할 시청자들의 관심이 KBS로 향하지 않고 있다.

KBS에 가장 먼저 개편이 필요한 사항은 무엇이라 보는가?

정 공영 방송사 스스로 가장 많이 혁신하고 변화해야 하지만,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공영 방송의 근간이 되는 법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KBS 뉴스를 매일 보지 않으면서도 공영 방송 뉴스가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 현실을 타개하려면 대통령부터 정당, 방통위에서 방송사까지 이어지는 정치적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공영 방송이 매번 정치적인 쟁점이 되었던 걸 떠올리면, 쉽지 않아 보인다.

정 그래서 시민의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시민이 끊임없이 공영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감시하고, 국회와 정치권이 인사를 통해 공영 방송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공영 방송 거버넌스가 만들어지도록 추동해내야 한다.

한국 국민들의 공영 방송 제도에 대한 관심은 어떤가?

홍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매년 40여 개 국가의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디지털 뉴스 리포트’를 발간한다. 이 리포트에 국민들이 공영 방송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평가 항목이 있다. 최상위권은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이 차지한다. 한국 국민들도 이 지표만 보면 북유럽 국가에 뒤지지 않을 만큼 공영 방송을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반면 북유럽과 다른 점은 뉴스에 대한 신뢰도다. 북유럽 국가들은 뉴스 신뢰도 평가에서도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2023년 기준 28퍼센트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주목할 점은, 전체 뉴스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상황에서도 공영 방송으로 분류되는 MBC와 KBS가 신뢰도 순위에서 1·2위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우리 국민은 공영 방송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비록 뉴스 신뢰도는 다른 국가에 비해 낮지만 그래도 국내 사업자 중에서는 공영 방송의 뉴스를 가장 신뢰한다. 해석을 더하자면, 향후 공영 방송에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면 공영 방송의 최우선 과제는 시청자들의 높은 기대치와 상대적으로 낮은 결과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다.

그래서 책에서는 ‘독보적인 저널리즘’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어떤 의미인가?

정 정치권력, 시장 권력, 그리고 이익 집단이나 시민단체 등 모든 이해관계 집단으로부터 독립하여, 이들에 대한 감시·견제·비판을 수행하고 사회 문제에 대안을 제시하는 공론장으로서의 저널리즘을 말한다. 기본적으로는 사실에 충실한 보도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누구더라도 수긍할 수 있는 저널리즘을 구현하려면 KBS의 쇄신이 필수적이다. 내부에서 저널리즘에 대한 원칙과 제작 체계를 단단하게 구축하며 역량을 다질 필요가 있다. 높은 수준의 사실 확인, 윤리, 자체 심의를 기준으로 한 완성도 높은 보도, 문제가 제기되더라도 취재 및 제작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는 보도다. KBS 뉴스가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는 의심과 비판을 넘어서려면 투명성과 설명 책임을 강화하며 시민들의 신뢰를 획득해야 한다.

KBS의 신임 사장 후보가 선정됐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는가?

홍 예단할 수 없다. 앞으로 인사청문 과정에서 신임 사장이 가진 위기 타개책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다만 지금 정부의 기조나 방통위, KBS 이사회에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KBS가 다시 한번 정치적 격랑 속에 빠지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KBS 2TV 민영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홍 역으로 질문을 던져 보면 자명히 보일 사안이다. KBS 2TV를 민영화하면 KBS가 바로서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 당시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경 조직이 해체됐다. 그러나 해경 본연의 업무였던 해안 경비, 수사, 구조 업무는 사라지지도 달라지지도 않았다. 민영화는 이와 같은 방식의 처방전이다.

공영 방송의 역할은 어떻게 다시 세울 수 있을까?

정 일차적 이해 당사자인 시민에게 물어야 한다. 시민의 관점에서 ‘공영 방송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공영 방송 제도는 그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적 배경에서 자유롭지 않은 만큼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모델이 필요하다. KBS가 먼저 자체적으로 이러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대규모 국민 인식 조사부터 공론화 위원회 등 심층적 논의, 시장 내 사업자와 전문가, 학계 및 연구 기관이 참여하는 포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문제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 과정에서 중심에 둘 것은 정치권력도, 시장도 아닌 시민이어야 한다.

연구자로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