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저널리즘은 “책처럼 깊이 있게, 뉴스처럼 빠르게”라는 모토로 이미 100권의 책을 출간했다. SBS라는 레거시 언론사와 협업을 진행한 이유가 있나.

김혜림 에디터(이하 혜림) 레거시의 문법을 이미 잘 알고 있는 회사에서 요즘 문법의 필터로 뉴스를 다시 써 내려갔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트렌드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어쩌다〉는 40대 이상의 시각, 특히 경제적 관점에서 다뤄왔던 생활 경제 뉴스, 트렌드 뉴스를 문화, 사회학적 관점으로 재해석했다. 실제 MZ세대에 해당하는 담당 기자가 ‘거지방’ 등을 직접 체험하며 만든 콘텐츠다. 그랬기 때문에 MZ세대의 트렌드 뒤에 숨겨진 ‘욕망’이라는 키워드가 명징하게 드러날 수 있었다. 편집 과정에서 이 점을 강조하고자 했고, 책 제목도 《욕망으로 쓰는 트렌드 보고서》로 결정됐다.

정원진 에디터(이하 원진) 언론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지만, 동시에 그 문제들을 심화한다는 비판에도 직면해 있다. 그렇다면 사실을 제시하는 기존 언론의 방법론을 좀 바꿔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마부뉴스〉의 경우 ‘데이터’라는 필터로 뉴스를 다시 구성한다. 숫자로 다시 들여다보면 갈등이 생산적인 논의로 바뀐다. 취재력과 정보력이 있는 레거시 언론사에서 데이터 저널리즘에 진심으로 도전했기 때문에 가능한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설명하기 지친 사람을 위한 데이터》라는 제목의 책으로 다시 엮으면서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자 노력했다.

디지털 콘텐츠를 종이책에 담았다. 차이가 무엇인가.

혜림 뒤에 무슨 내용이 나올지 모른다는 점이다. 디지털 콘텐츠와 종이책의 가장 큰 차이는 독자 경험이다. 종이책 독자는 그다지 관심 없던 이슈도 읽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편집한 《욕망으로 쓰는 트렌드 보고서》의 경우, 다양한 트렌드를 분석한 책이다. 요즘 세대는 왜 거지방 챌린지를 하고 오마카세를 먹을까. 왜 〈환승연애〉를 보고 웨딩 스냅을 찍을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슈들이 한 책에 들어가 있다. 읽으며 이 생각 저 생각도 할 수 있고, QR코드도 있어서 영상을 시청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산만한 독서가 가능하다. 보통 뉴스나 책은 의무감 때문에 읽는 경우가 많지 않나. 이 책은 그 부담을 줄여 준다. 나도 굉장히 산만한 상황에서 편집했다. (웃음)

혜림 뉴스와 책 모두 부담스러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다양한 이슈를 해석하고 한데 묶는 과정에서 관점과 통찰이 생긴다. 사실 트렌드라고 해도 관심사에 따라 공감하는 주제가 다르다. MZ세대 트렌드를 다룬 서적은 보통 한 쪽의 입장을 설명하는 데 그친다. 《욕망으로 쓰는 트렌드 보고서》는 다양한 트렌드를 모아 놓고, 트렌드가 작동하는 원리를 찾는다. 이 책에서는 그 키워드가 ‘욕망’인 것이다. 나도 이 책을 편집하며 웬만한 트렌드의 작동 원리를 깨달았다.

원진 처음부터 책 한 권에 최대한 다양한 주제와 경험을 담고자 했다. 내가 편집한 책 《설명하기 지친 사람을 위한 데이터》에는 기사를 보면서 우리가 흔히 가져왔을 법한, 하지만 명확하게 답은 낼 수 없는 질문을 모두 담았다. 90년생은 국민연금을 못 받을까, 흑인 인어공주를 둘러싼 논란엔 어떤 입장을 지지해야 할까 등. 그리고 QR코드를 통해 관련 데이터 소스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하나의 이슈를 깊게 파는 것도 좋지만, 그러기에 지금 이 세상에는 정보가 너무 많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다양한 경로로 흡수하고 싶어 하는 요즘 독자에게 어울리는 책이다.

혁신이라는 키워드로 책 세 권을 설명한다면?

현구 《리디파이닝 REDEFINING》는 어떻게 보면 가장 실용적인 혁신을 말한다. 올해 상반기 스타트업 투자액이 지난해와 비교해 68퍼센트 급감했다. 책에 나오는 다섯 스타트업은 2010년대 성행한 플랫폼 비즈니스의 승자들이다. 위축된 투자 시장에서 중요한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들의 서비스는 안 써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상용화돼 있다. 특히 일상적인 분야, 즉 누구라도 혁신을 꿈꿀 수 있지만 누구도 쉽게 성공하지 못한 분야에서 사용자 경험을 새롭게 만들어 냈다. 고려대 남대일 교수 팀의 분석 보고서, 이를 기반으로 한 경영진 인터뷰를 엮어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혜림 트렌드는 흘러간다. 이를 혁신으로 만들기 위해선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요즘은 트렌드라는 단어가 남용되면서 개인 혹은 세대 사이에 벽을 만드는 도구가 됐다는 생각도 든다. 모두가 트렌드를 일순간 반짝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것으로 인식한다면, 매 가을마다 서점 매대를 채우는 트렌드 전망 서적들은 어떤 구조적 변화도 만들어 내기 힘들다. 그래서 《욕망으로 쓰는 트렌드 보고서》는 트렌드의 근원을 좇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트렌드라는 도구를 통해 각자 다른 욕망을 가진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면, 트렌드는 단순한 유행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원진 《설명하기 지친 사람을 위한 데이터》에는 데이터로 ‘혁신’이라는 단어를 들여다보는 챕터가 있다. 인류가 지금까지 생산한 데이터를 합치면 2018년 기준으로 33제타바이트다. 제타는 10의 21제곱에 달하는 단위다. 2025년이면 181제타바이트까지 쌓일 수도 있다. 어마어마한 정보가 주변에 있는데 오히려 혁신은 둔화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전 연구를 인용한 정도가 높다면 기존 지식을 발전시킨 논문으로 볼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창의적인 연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수치화한 게 CD지수인데, 1945년부터 2010년까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가 그 양에 비해 데이터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북저널리즘과 스브스프리미엄의 협업, 시너지가 있었다고 평가하나.

〈어쩌다〉와 〈마부뉴스〉는 기자들이 쓴 콘텐츠인데.

이번 협업으로 탄생한 세 권 이후에도 북저널리즘의 도전은 계속될 예정이다. 어떤 혁신을 쌓아 나갈 생각인가.

원진 레거시 미디어에겐 디지털이 혁신이지만, 북저널리즘 같은 뉴미디어에겐 종이가 혁신이다. 종이 뉴스를 마지막으로 읽은 적이 언제인가. 떠올리기 어려울 것이다. 북저널리즘은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고민해 왔다. 뉴스를 종이로 읽어본 적 없는 세대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고자 했다. 북저널리즘이 종이 뉴스 잡지 스레드(THREAD)를 만든 이유도 마찬가지다. 북저널리즘이 뉴스를 담을 매체로 종이책을 선택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현구 또 혁신은 묵은 것을 새롭게 바꾼다는 뜻이다. 종이 신문의 혁신은 디지털이 될 수도 있지만 빠르고 압축적인 통찰을 담은 책이 될 수도 있다. 엄지로 쉽게 스크롤할 수 있는 정보는 많은데 한 페이지씩 넘기며 곱씹는 정보는 사양 산업이라 한다. 너무 무겁기 때문은 아닐까? 1년 전의 기획을 지금 읽게 되는 출판의 속성 때문은 아닐까? 북저널리즘은 기획에서 발행까지 3개월 안에 완성한다. 보통 하나의 이슈가 무르익어 논의로 성숙하는 기간 동안 맥락과 고찰, 디테일한 정보가 담긴 책 한 권이 탄생하는 것이다. 빠른 완독이 가능한 깊이 있는 정보에 시의성을 더하면 단편적 뉴스와 무거운 책 사이에서 고민하던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