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는 게 두려운 것이 아니다. 멋지게 나이 들지 못하는 게 두려운 것이다.
대기업 정직원 전환을 앞두고 있던 인턴을 창업으로 이끈 것은 사진 한 장이었다. 해외 패션 디렉터 닉 우스터(Nick Wooster)의 모습이었다. 멋지게 차려입은 중년의 디렉터 옆에는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카페 사장님을 데려다 자신이 가진 옷으로 갈아입혔다. 패션 콘텐츠 기업 더뉴그레이의 시작이었다. 시니어 인플루언서 그룹 ‘아저씨즈’를 기획하고 시니어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권정현 대표를 만났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지에 대해 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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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나 개인이 신체적 노화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다. 예순만 넘어도 ‘네가 빨리 결혼해야 편하게 눈을 감지’라는 말을 하는데,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 건강하다. 노화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죽음으로 귀결된다. 신체적 노화에 집중하다 보니 시니어 산업이라고 할 것도 요양원, 실버타운이 전부다. 정신적 노화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그러면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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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시니어 산업의 공식을 다 버리는 것이다. 일할 때는 가급적 ‘어른 공경’이라는 말도 멀리하려 한다. 주인공이 된 시니어에 젊은 문화를 입히면 끝이다. 어른이 등장하는데 장소가 성수동 에스프레소 바, 배경음악이 뉴진스의 하입보이(Hype Boy)인 것이다. 생각보다 단순한 로직이지만 어떻게 보면 센세이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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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인플루언서 그룹 ‘아저씨즈’의 틱톡 영상이 1000만뷰를 넘었다. 전략이 통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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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단순하게 가려 한다. 멤버들에게 무엇을 촬영할지 미리 말하지 않는다. 당일에 알려주고 5분 연습한다. 촬영도 두 번이면 끝이다. 건물 1층에서 찍으면 엘레베이터 타고 올라오면서 편집해 SNS에 업로드한다. 애매하게 멋 부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조금 부족해도 멤버들이 즐거워하는 현장 분위기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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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촉이었다. 처음에는 ‘그레이 아이콘’ 등이 언급됐다. 아저씨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자 만드는 콘텐츠인데, 이것저것 피하는 단어를 쓸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아저씨라는 단어에 ‘꼰대’ 같은 부정적인 느낌이 있다 보니 내부에서도 동의를 모으기 쉽지 않았다. 그냥 밀어붙였다. 주도권을 가지고 어떻게 보면 멤버들의 의견을 묵살했다. 그게 포인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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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디렉터가 30~40살 차이나는 어른들과 일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시니어 산업의 유일한 진입장벽이고, 그래서 팀조차 못 꾸리는 경우가 많다. 일단 진행하고 결과로서 보인다. 이제 신용이 생겨서 ‘대장은 생각이 다 있구나’하고 따라오신다. (웃음) 요즘은 시니어들이 브이로그를 시작했으면 해서 내가 먼저 찍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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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이 아닌 인플루언서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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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들도 자기 콘텐츠를 가져야 한다. 시니어 모델 열풍이 불면서 이에 대한 환상도 커졌다. 하지만 지금의 시니어 모델 시장은 경쟁이 심하고 대체되기 쉬운 상황이다. 젊은 사람들은 모델보다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어 하는 추세다. 밀라논나, 박막례 할머니, 순자 엄마 등 시니어 인플루언서들이 있지만 기획과 편집은 젊은 사람들이 한다.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게 사진·영상 기술을 교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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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그레이클럽이라는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이유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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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3개월간 개인의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을 돕는다. SNS 활용법 등 요즘 미디어에 대한 이해를 돕고, Z세대 관련 책을 읽고 독서 토론을 하기도 한다. 마지막 날엔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 가서 자신의 이야기로 강의를 하는 시니어 테드(TED)를 기획했다. 보통 시니어들이 무엇을 한다고 하면 미사리 카페를 대여하는데, 최대한 젊은 세대만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으로 찾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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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산업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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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시니어가 전 세계에서 가장 젊다. 새로운 감각에 민감하고 인터넷과 스마트폰 활용 능력도 앞서 있다. 고령화가 문제라고 하지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새로운 시니어 문화를 잘 세팅해 놓으면 고령화의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실제 일본으로 관련 산업을 확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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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우스터를 보고 시니어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그전까지 권정현 대표에게 ‘어른’은 어떤 존재였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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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 대해서 별생각이 없었다. 제일 가까운 남자 어른인 아버지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닮고 싶지 않은 가장이었다. 그래서 닉 우스터를 보고 충격이 더 컸을 수도 있다. 나에게 어른은 덜 ‘꼰대’스러우면 다행인, 반면교사 삼는 존재였는데 처음으로 닉 우스터를 동경하게 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나보다 어른인 사람과 친구가 된다는 생각은 감히 못 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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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니어들과 가장 많이 만나는 젊은이 중 하나일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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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차 난다고 다를 것 없다. 호칭만 선생님일 뿐 같이 카페도 가고 여행도 간다. 예전에 일하던 공유 오피스에서 오며 가며 마주치는 분이 있었다. 옷을 잘 입어서 자꾸 눈길이 갔다. 중국어 에듀테크 스타트업의 공동대표로 계신 분이었다. 서로 눈빛만 주고받다가 지인의 소개로 친구가 됐다. 지금은 더뉴그레이의 시니어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패션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친구가 될 수 있구나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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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옷 입는 것을 좋아했다. 대학생 때부터 내 돈으로 직접 사 입기 시작했는데, 엠씨엠(MCM) 브랜드의 백팩이 한창 유행할 때였다. 백팩을 메고 과외를 하러 갔는데 고등학생들이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비싼 가방 때문에 위화감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때 옷으로 의미 있는 무언가, 남한테 상처가 되지 않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도 적게 들면서 가장 빠르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옷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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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와의 협업 프로젝트 ⓒ국가보훈처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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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작한 메이크오버 프로젝트가 흥했다. 의미도 있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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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와 6·25참전용사 메이크오버 프로젝트 ‘다시 영웅(The New Veterans)’을 진행하고, 참전용사의 손녀 한 분이 메시지를 보내 왔다. 그간 할아버지가 전쟁 얘기를 할 때마다 듣기 싫었는데, 정장을 입은 할아버지를 보니까 자랑스럽게 느껴진다는 내용이었다. 의미있는 일을 했구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메이크오버한 경험이 인상 깊다. 전국 어부와 농부를 만났는데, 외적으로는 안 다듬어져 있지만 아직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활기가 넘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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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메이크오버를 하면서 우리나라 중장년층의 삶이 얼마나 획일화되어 있는지 느끼기도 한다. ‘아빠 프로필 사진 바꾸기’ 신청을 받으면 자식들이 보내는 사연이 거의 똑같다. 대기업에서 30년 근무하다 은퇴 후 무기력한 아버지, 전업주부로 살아오신 어머니, 일반적인 중산층의 모습이다. 큰 어려움 없는 생활이지만 만나 보면 어딘가 조금씩 처져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옷을 바꾸는 것만으로 굉장한 자신감을 얻는 모습을 매번 확인한다.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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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발란스와 협업한 메이크오버 프로젝트 ⓒ더뉴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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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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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기호가 지금의 머물러 있으면 〈미스터트롯〉 말고는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이 없다. 더뉴그레이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옷은 시니어 모델이 걸치고 있지만,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사서 입는다. 젊은 세대에게도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다.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취향을 찾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지금은 그 수단이 스마트폰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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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 않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모범생이었고, 공부 열심히 했고, 좋은 대학교를 나왔다. 의대 간다고 수능을 또 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이 경쟁 속에서 나는 절대 이길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남과는 다른 하나를 찾기 위해서 여러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겁쟁이가 회피한 것인데, 용기 있는 사람이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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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것을 찾는 권 대표의 방식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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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콘텐츠를 본다. 메인 창구는 유튜브다. 철학부터 코미디, 여행, 우주 등 구독 범위도 넓다. 책은 특정 부분만 읽고 나름의 사유를 거치면 끝이다. 완독은 안 한다. 대신 가능한 빨리 아웃풋을 내놓으려 한다. 한번이라도 직접 해 보면 몸에 각인이 된다. 보고, 듣고, 하면 몸이나 뇌 어딘가에 저장이 되어 있다가 나중에 알아서 섞여서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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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들에게 말하는 것은 결국 나의 이상향이다. 계속 열려 있고 싶다. 나이듦과 젊음을 나누는 기준은 나이가 아니다. 개방성, 새로운 상황에 기꺼이 뛰어들고 낯선 것을 경험하는 태도다. 나이 드는 게 두려운 것이 아니다. 멋지게 나이 들지 못하는 게 두려운 것이다. 멋지게 나이 들기 위해선 지금부터 연습이 필요하다. 세대를 막론하고 열려 있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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