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alks; 헤드폰이라는 취미 생활에 깊이를 더하는 법

데시벨이라는 단위는 절대적이지 않다. 기기 간 상대 비교를 할 수 있는 측정값 그래프를 만들었다.

2023. 4. 11.

무형의 소리를 리뷰하는 법

음향기기 리뷰어 영디비

헤드폰을 낀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기나긴 출퇴근길,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어도 노이즈캔슬링 하나면 나만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이미 취미생활로서의 역사가 깊다. 전기차, AR, VR 산업도 소리를 주목하고 있다. 사이트와 유튜브를 통해 무형의 소리를 리뷰하는 영디비를 만났다.

왜 음향기기인가.

삼성전자가 하만 인터내셔널(HARMAN International)을 산 이유가 무엇일까. 하만은 오디오 산업에서 가장 큰 그룹 중 하나다. 다시 말해서, 차에 들어가는 부품, 전장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전기차로 전환되면서 차가 조용해졌다. 또 요즘은 차 캠핑 문화도 발달하면서 차에게 음악 듣는 시간이 늘어났다. 전장산업뿐 아니라 AR, VR 산업에서도 퍼스널 음향 디바이스가 중요해지고 있다.

왜 리뷰인가.

취미생활로서 헤드폰 시장도 공고하다. 무언가 몰두한다는 것 자체가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어폰, 헤드폰은 혼자서 하는 취미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편하게 취미생활을 공유하면서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음향기기 리뷰를 기반으로 사이트를 만들고, 유튜브를 운영하는 이유다. 리뷰는 전문적으로 ‘덕질’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다.

유튜브는 어떻게 시작했나.

시대의 흐름에 따른 결정이었다. 콘텐츠 소비 습관이 영상으로 옮겨 가며 블로그를 운영하던 사람들도 모두 유튜브로 확장했다. 지인들의 채널에 출연하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그때 확실히 느꼈다. 할 수밖에 없겠다 싶어 2018년 자연스럽게 유튜브 채널을 만들게 됐다.

텍스트와 영상은 문법 자체가 다를 텐데, 어려움은 없었나.

영상은 계속 보고 있게끔 만드는 것, 시청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자신 있는 분야는 아니었다. 영디비 채널은 조용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진짜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이 구독하는 것 같다.

세 가지 이어폰 제품을 비교하는 그래프 ⓒ영디비

영디비가 제공하는 진짜 정보는 무엇인가.

측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애초에 데시벨이라는 단위가 사람이 감각적으로 느끼는 바를 측정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이지 않다. 개인마다 듣고 느끼는 것이 다르고, 취향에 따라 좋은 소리의 기준이 달라지기도 한다. 기기 간 절대 비교가 아닌 상대 비교를 할 수 있는 0dB GRAPH(영디비 그래프)를 만들었다.

소리를 볼 수 있게 한 것인가.

그렇다. 내가 쓰고 있는 제품과 관심 있는 제품의 측정값을 비교해서 볼 수 있다. 내가 쓰고 있는 제품을 기준으로 저음이 잘 나오겠구나, 고음이 잘 나오겠구나,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어폰과 헤드폰 150여 종에 대한 측정값이 등록되어 있다. 영디비 사이트에서 직접 해볼 수도 있다.

고음과 저음 중 어떤 것이 잘 나오는 게 좋은 제품인가.

그 또한 상대적이다. 보통 초기 유저는 저음이 잘 나오는 제품을 선호한다. 그리고 음향기기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면 고음이 잘 나오는 제품에 관심을 가진다. 고가 제품으로 갈수록 취향이 더 개입한다. 균형감을 중시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각 악기의 소리를 분리해서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헤드폰은 비쌀수록 좋은가.

만 원에서 10만 원짜리로 옮겨 가면 기술적인 차이가 확 느껴진다. 확실히 다르고 좋다. 그런데 10만 원에서 100만 원은 변화가 그렇게 크진 않다. 그때부터 다시 취향의 영역이다.

정기모임 참여자들이 청음할 수 있게 마련한 제품들 ⓒ영디비

헤드폰이라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는 어떤가.

정말 음향기기에 관한 말만 한다. 유저의 연령대와 거주 지역은 다양하다. 공통점은 헤드폰밖에 없다. 유저 리뷰도 퀄리티가 굉장히 높다는 평을 받는데, 가끔은 그게 진입장벽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편하게 노는 공간이 됐으면 해서 정기모임도 운영한다. 정모 참석자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기를 자랑하기도 하고, 다른 기기를 구경하기도 한다. 내 역할은 기술에 대한 설명으로 취미생활에 깊이 더하는 것이다.

본인도 헤드폰이라는 취미를 가진 사람 중 하나 아닌가.

소리라는 무형의 것에 매력을 느낀 계기가 궁금하다.

맞다. 지금은 일이 되어 버렸지만. (웃음) 나의 첫 이어폰은 소니의 MDR-E888이었다. 바이오 셀룰로오스 진공판으로 만들었다고 마케팅을 했던 제품이다. 처음 듣던 날, 신세계가 열린 것 같았다.

친구들과 오디오 잡지를 돌려 보던, 기계를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고 드럼 치는 것을 좋아했다. 실력이 늘지 않던 차, 똑같은 드럼인데 친구가 치니까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 소리를 흉내 내려고 해도 잘 안 되어서 드럼에는 재주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소리를 만들고 싶어서 음향공학과에 진학했다. 지금은 없어지고 보청기과로 바뀌었다고 하더라.

드럼에는 소질이 없지만, 좋은 소리를 듣는 귀를 타고났던 것인가.

그렇지도 않다. 절대음감은 아니다. 일단 관심을 가진 만큼 들렸다는 게 첫 번째고,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훈련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측정 그래프를 눈으로 보면서 듣다 보니 이제는 특정 제품을 들으면 어떤 패턴이 나오겠거니 예상이 된다.

왜 엔지니어를 그만뒀는지도 궁금하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대 초반까지 크레신에서 이어폰을 개발했다. 당시 한국 음향기기 시장이 1200~1500억 원 규모로 절대 작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홍보를 하고 알려도 마니아들만 알 수 있는 시장이었다. 최종적으로는 내 것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그러기 위해선 마케팅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해서 이직했다.

음향기기 시장에서 마케팅은 얼마나 중요한가.

매우 중요하다. 사실 노이즈캔슬링 기술은 1980년대 제품화됐다. 한국에서도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2016년 애플이 에어팟을 만들면서 보급화되기 시작했다. 음향기기는 일단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애플이 지금의 시장파괴력을 가지는 것은 마케팅 덕분이다.

다른 사례도 궁금하다.

‘테슬라 드라이버’라고 불리는 베이어다이나믹의 티원(T1)헤드폰이 있다. 헤드폰에는 진동판의 움직임을 만드는 마그넷이 들어간다. 자력이 강할수록 소리가 정교해진다. 테슬라는 자력의 단위다. 1만 가우스가 1테슬라다. 전기차 테슬라와는 관련이 하나도 없지만, 마케팅을 잘한 사례다.

무향실에서 스피커를 측정 중인 모습 ⓒ영디비

영업직으로도 일했다고 들었다.

일하던 회사가 마케팅에 큰 투자를 안 했다. 보도자료 뿌리는 등 몸으로 부딪치는 마케팅을 많이 배웠다. 한계를 느껴서 영업직으로 옮겼고, 영업은 인맥 싸움이라는 교훈을 얻고 나왔다. 이제 내 것을 하고 싶어서, 회사를 차렸는데 그때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 유튜브도 지인들 덕분에 시작한 것이고, 영디비 스토어도 할 수 있었다. 당시 거래처 청음샵 사장님들이 리뷰 해서 먹고 사냐고 걱정하면서 물건 줄 테니 팔아보라고 제안해주신 덕분이다.

지금은 헤드폰 대중화가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확실히 많이 보인다. 패션스타일로 자리 잡은 것 같기도 하다. 길 다니다 보면 제품부터 보이고, 왼쪽 오른쪽 바꿔 낀 것까지 보인다. 볼 때마다 괴롭다. 왼쪽 오른쪽에서 출력되는 악기가 다르기 때문에 반대로 끼면 음악이 아예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웃음)

영디비 사이트 유저도 늘어나지 않겠나.

그렇지는 않다. 시장은 커져도 마니아층은 그대로인 것 같다. 에어팟 유저들이 영디비 사이트에 놀러 오지는 않는다. (웃음) 하지만 그 이상을 보고 있다. 헤드폰이라는 취미를 즐기는 데 있어서도 지역 격차가 존재한다. 오프라인으로 청음할 기회는 상대적으로 서울에 많다. 영디비 그래프를 해석하는 것은 아무래도 진입장벽이 높다. 이 데이터를 활용해 헤드폰 구매 과정에서 실패를 줄일 수 있는 서비스를 고안 중이다. 출력값을 조정해 다른 제품을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애플리케이션이다.

엔지니어, 마케터, 영업사원, 리뷰어까지. 음향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는 것 같다. 다음은 경영인인가.

내 것을 하기 위해 나왔지만 아직 경영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경영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스타트업 관련 교육도 듣고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인 디캠프(D.CAMP)로 출근하기도 했었다. 지금까지 음향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일의 방향을 살짝씩 틀어 왔다. 이 테두리를 벗어나기는 힘들 것 같다. 음향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내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글 정원진 에디터